광주 양과동(良苽洞) 수춘마을 ‘구름천사’는 오늘도 토닥토닥 격려

노의웅 미술관 ‘구름천사’ 하늘에서 산에서 내리는 위로해주는 꽃
지산마을, 수춘마을, 도금마을 등 사계 관통하는 뜻 깊은 역사 마을
신선이 된 최치원의 아름답고 섬세한 성찰이 주는 곱디 고운 ‘구름천사꽃’

강경구 기자 smilenews@kakao.com
2023년 12월 10일(일) 20:31
노의웅 교수를 ‘詩를 그리는 화가, 그 분은 이미 시인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는 블러거의 글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날이다. 그는 이어 ‘노의웅 교수의 미술을 문학으로 그리운 고향의 동요’라고 표현 했다[영원한 구름천사 노의웅 화가, 작성자 서귀포 오감].
[밝은뉴스] 노의웅 미술관, 양과동정, 지산재와 도금마을까지...
노의웅 교수의 미술관이 있는 양과동(良苽洞)은 고려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1481) 에 '양과부곡' 으로 기록되어있다. 광주에 비가 내리면 산이 먼저 울었다는 일화를 간직한 건지산(乾芝山, 300m)이 지척이다.
노의웅 교수의 미술관이 있는 양과동(良苽洞)은 고려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1481) 에 '양과부곡' 으로 기록되어있다. 광주에 비가 내리면 산이 먼저 울었다는 일화를 간직한 건지산(乾芝山, 300m)과 산이름에서 지산(芝山)만을 취하여 명명한 신라말 비운의 천재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을 배향하는 지산재(芝山齋)가 수춘마을 초입 지산마을에 있다.

최치원의 호는 고운(孤雲) 외에 해운(海雲)이 있다. 네 살에 글을 익혔고, 열 살에 사서삼경을 읽었다. 열두 살 때 당나라 유학 후, 17살 때 과거 급제하였으며, 16년동안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당나라 생활 청산 후 884년 가을경 28세에 그리운 고국 신라로 왔지만 골품제로 인한 신분 차별을 뛰어넘지 못해 숱하게 좌절해야 했다. 진성여왕에게는 신라 개혁정책 ‘시무10조’를 올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가 38살 무렵이다.

양과동(良苽洞) 수춘마을 ‘구름천사’는 오늘도 토닥토닥 격려해준다. 노의웅 미술관에서 만나는 ‘구름천사’는 하늘에서 산에서 내리는 마음 가득 위로가 되주는 '위로꽃'이다.
신라 881년 헌강왕 7년, 당나라 희종 황제시절 ‘최치원’이 쓴 ‘토황소격문’을 읽은 황소는 격문을 읽고 너무 놀란나머지 침상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칼’이 아닌 최치원의 ‘글’이 보여준 괴력이었다. 뜨거운 여름 한 철 활활 타오르는 건지산 지산재의 빠알간 배롱나무가 늦가을 찬 바람에 휘날릴 때면 신선이 됐다는 비운의 천재 고운(孤雲) 최치원이 구름이 되어 흘리는 처연한 눈물꽃을 마주할 수 있다.


건지산 아래 지산마을과 이웃한 수춘마을, 고운이 흘린 눈물 구름천사 되어 ‘토닥토닥’

노의웅 교수를 ‘詩를 그리는 화가, 그 분은 이미 시인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는 블러거의 글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날이다. 그는 이어 ‘노의웅 교수의 미술을 문학으로 그리운 고향의 동요’라고 표현 했다[영원한 구름천사 노의웅 화가, 작성자 서귀포 오감].

노의웅에게 아름다움은 어쩌면 만인을 위한 아름다움이다. 위로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위로를 필요로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노의웅에게 아름다움은 어쩌면 만인을 위한 아름다움이다. 위로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위로를 필요로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오픈되어 있는 미술관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새 지나가버리는 시간... 어느사이 식어있는 커피... 그렇지만 향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수춘마을은 늘 오고싶은 곳이다.

어느날 나는 꽃다웠던 아버지의 청춘이 물씬 풍겨나는 스무살의 일기장에서 아버지가 그토록 열망했던 꿈이 문학으로 촘촘하게 스며있음을 볼 수 있었다. 틈틈이 오유권 선생님 같은 동시대 유명 문학인들과 교유했던 아버지의 글귀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고독, 혹은 아쉬움... 조금은 서글픈 청춘의 자화상들이었다. 나도 그때의 아버지처럼, 지금의 교수님처럼 한때 꾸었던 꿈을 영원히 간직하며 사력을 다해 글을 쓰고 싶다.


건지산 자락 지산마을의 붉은 배롱나무 꽃과 연꽃 유명한 수춘마을까지

신라말 비운의 천재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을 배향하는 지산재(芝山齋)가 수춘마을 초입 지산마을에 있다. 최치원의 호는 고운(孤雲) 외에 해운(海雲)이었는데 신선이 됐다는 고운(孤雲)이 구름이 되어 흘리는 처연한 눈물꽃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노 교수가 자리 잡은 수춘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범람하는 곳으로, 바다와 연결되어 소금을 매개체로 하는 수상 무역과 어업이 성행하던 곳이다. 미술관에서 양과동정까지는 지척이다. 양과동정에 있는 제액 역시 조선 정치계와 거목이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썼을 정도다. 당시 양과동의 정치적인 그라운드는 크고 광범위했다.

노의웅 미술관 주변 마을에는 수 백 년 된 나무가 많이 있는데, 차로 십여분 거리의 칠석동에는 650년된 은행나무, 도금마을에는 700년 된 느티나무와 350년된 이팝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울 때면 저수지의 반영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이렇듯 양과동은 붉은 배롱나무와 연꽃, 그리고 하늘거리며 피어나는 새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계절을 따라 조화를 이룬다.

고작 100년을 살지 못하는 우리네 인생사를 반추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양과동은 붉은 배롱나무와 연꽃, 그리고 하늘거리며 피어나는 새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계절을 따라 조화를 이룬다. 지난 5월인가 수춘마을을 걸을 때 길가에 핀 우단동자꽃마져 붉고 선명하게 빛나주고 있었다.
강경구 기자 smilenews@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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