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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를 넘기지 못 할 것 같았던 어머님은 그 후 28년을 더 사셨고, 88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님이 가셨던 88세 되던 해에 이런일도 있었다. 어머님에게 당뇨 합병증이 있었는데 그 당시 병원에 오래 입원하다보니 욕창이 생겼던 것이다.
수술하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욕창으로 돌아가실 것 같았다. 병원 측에선 “노인이라 깨어나지 못할 수 있으니 수술은 큰 효과가 없다”고 했고, 다른 대부분의 가족들도 수술은 반대 했었다.
당시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것은 자식 된 도리였다. 어머님께서 욕창이 생긴 채 흉하게 돌아가시는 것은 정말 옳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술 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어느 것이 부모를 위한 것인가? 어느 것이 아들과 며느리로 해야 할 일인가?’ 당시 나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깨어나지 않으셔도 좋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결국 수술을 시행 했지만 어머님은 간절함을 저버리고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지금은 아내 역시 하늘나라에 갔지만 우리 부부는 부모님에 대한 섬김과 봉양에 아무런 여한이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봉양 했다는 것이 마음의 전부이고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사는날 동안 아주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 했다는 생각이 날 때면 그래도 감사의 마음이 들어 가슴 뿌듯해지기도 한다. 어머님의 함께했던 오래 시간과 그날 이후... 많은 시간은 흘렀지만 생전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썼던 글씨가 ‘효’자다.
생전 아내와 나, 우리 부부는 늘 전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애잔하고 텅 빈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마음 가득... 가슴 가득... 마음을 숙연하게 가다듬고 어머님께 전해 드리는 글씨가 바로 ‘효(孝)’였다. 머나 먼 이역으로 떠났던 탕자가 돌아와 비로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다.
다음으로 먼저 구할 것은 의(義)다.
위에는 양의 모습으로 신약성경의 십자가와 밑에는 나를 분해해서 드려지는 모습이다. 먼저 의(義)를 행한다는 것처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있으랴... 의는 희생이다.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어떻게 의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하얼빈에서 일본 충독의 얼굴에 권총을 꺼내들었던 안중근 의사의 불꽃같이 타올랐던 정의로움은 결국 자기 몸을 던진 희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 가서 헌신예배를 인도했었다. 그때 나는 ‘의(義)’자를 들고 나가 한참동안 설명했었다. 의는 결단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행동을 원한다. 헌신(獻身)인 것이다.
시대가 막나갈수록 우리는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의의 갑옷을 입으라 하셨던 하나님의 기준이 바로 의인 것이다.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정의로운 편에 서서 가자.
밝은뉴스 한밀 정문철 smilenews@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