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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로암사람들이라는 장애인 선교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장애인이나 자원봉사를 하려는 사람들의 연락을 자주 받는다. 요즘같이 바쁘고 각박한 세상에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몇 년 전부터 중고등 학생들의 의무적인(?) 자원봉사 활동이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고,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지적되었지만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백번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장애인계의 주요한 이슈는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이 장애인자립생활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부모에게서 떠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 중증 장애인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중증장애인의 독립생활도 자원봉사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실로암사람들 기관으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지원자들에게는 가장 먼저 간단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하루 몇 시간의 자원봉사가 장애인들에게나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자원봉사 확인증이 필요해서 오는 아이들에게 교육시간은 자칫 잔소리 듣는 시간이 되기 일쑤이지만 몇 시간의 봉사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어쩌면 한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잔소리는 대충 이런 것들로 채워진다. 대상이 학생이라면 '배워서 남주자!'라는 말부터 시작한다. 우리 세대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워서 남주냐?'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그래서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달려갔고, 그 결과 이룬 모든 열매는 고스란히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했다.
마치 지난날들의 노력을 보상이나 받듯이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니 나눔이니 하는 말은 한낱 낭만에 초치는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참인가? 우리가 배워서 남을 줄 때에 자신의 배움과 소유와 능력이 참 의미를 갖는다.
물이 높은 곳에 고여있을 때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낮은 곳에 내려올 때 힘이 생기는 것처럼 자신의 태도를 낮추며 남에게 베풀 때 진정한 힘이 생긴다. 난 학생들이 모두 열심히 배워서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나누기 위해 수고하는 그 손길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자원봉사의 동기와 방법에 관한 것이다. 어떤 자원봉사자는 자신의 시간과 방법에 맞추어 자원봉사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누구를 위한 자원봉사인가 의문이 간다.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이나 성취를 위하여 자원봉사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물론 봉사를 통해 자기만족적인 면이 전혀 없을 수는 없으나 장애인의 필요보다 자신의 필요가 앞서면 장애인을 자신의 자원봉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자원봉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자원봉사를 받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자신이 판단해서 그 소견대로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필요에 민감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장애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들이 필요할 때 자원봉사자에게 용기 있게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장애인 ‘하나다 에구보’ 씨의 '나는 자원봉사자가 싫다'라는 글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교묘하게 자멸시킨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능숙하게 응석부리도록 만든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바라지도 않은 것을 해 주려한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겨우 남아있는 힘마저도 약화시킨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액서사리로 만들어 거리를 활보한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내 휠체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멋진 젊은이들의 결혼식을 장식하는 가련한 도구로 쓴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여름휴가의 과제로 여긴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나를 그들의 자녀에게 관찰일기를 쓰게 한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내 방자함과 완고함을 확실한 권리라고 우기게 한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오만과 무지를 가장 소중하게 개성이라고 믿게 만든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비협조와 몰상식을 늠름한 행동이라고 부추긴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고급 주택가 한 복판에 자립의 깃발을 꽂아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자원봉사자 그놈들은 사회 속에 섬을 만들어 나를 그 속에 고립시킨다.”
위 인용된 내용들은 정도가 지나치다 싶지만 자원봉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귀중한 것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받을 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는 노래처럼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몇 해 전 여름 실로암장애인캠프를 통해 62명의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장기기증을 약속했었다. 이것의 출발점은 장애인으로서 부모님께나 가족들, 이웃, 친구, 사회, 국가로부터 받기만 하는 삶을 살아온 장애인들이 무엇인가 이웃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가진 것이 없어서 초라하고 뒤틀린 몸이지만 우리의 가장 소중한 몸을 이웃과 나눈 것이다. 장애인도 자원봉사자들과 귀한 것을 주고받기 원하고, 그럴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쳤으면 좋겠다.
김용목 대표 smilenews@kakao.com